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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약] 두 가지 다른 냄새

사람이 맡는 냄새에는 두 가지가 있다. 들숨의 향기와 날숨의 향기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코로 들이마실 때 나는 냄새를 정비측 후각이라고 부른다. 코를 킁킁거리며 맡게 되는 냄새다. 반대로 음식을 한입 넣고 씹을 때는 목구멍 뒤에서 음식의 향기 물질이 날숨과 함께 비강으로 들어간다. 과학저술가 밥 홈즈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의 목구멍은 이러한 음식 냄새를 콧속 빈 공간으로 밀어 넣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다. 코로 들어온 공기가 목구멍에서 커튼 같은 차단막을 만들어서 입속의 향기 물질이 폐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다.   그 결과 음식을 입에 넣고 씹을 때 우리는 오롯이 날숨의 냄새에 집중할 수 있다. 개의 후각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날숨의 냄새에 관한 한 사람이 더 빼어난 후각을 자랑한다. 긴 코를 가진 개는 정비측 후각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사람은 후비측 후각이 잘 발달해있다. 후비측 후각은 인간만 가진 독보적 능력이다.   이러한 인체구조의 특징을 알고 나면 우리가 왜 냄새가 고약한 음식을 사랑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잘 삭힌 홍어로 끓인 홍어탕은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나지만 막상 입에 넣으면 진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난다. 중국 음식에 정통한 미식가 YTN 김진방 기자는 이를 ‘겉취속깔’(겉으로는 악취가 나지만 먹어보면 깔끔한 맛)이라고 묘사한다.   비슷한 예로 두리안 냄새는 코로 맡으면 너무도 고약하지만 입에 넣으면 그 맛이 훌륭하다. 달콤하며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맛보면 왜 두리안을 왕의 과일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옷에 냄새가 밸까 걱정하면서도 청국장찌개에 끌리는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반대로 갓 내린 커피 향기처럼 코로 맡을 때는 훌륭한 냄새가 입속에서는 별맛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와 넣기 전에 느껴지는 냄새가 다르다는 현상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저명한 음식 심리학자 폴 로진이다. 그는 벨기에산 림버거 치즈의 고약한 냄새가 막상 입에 치즈 조각을 넣으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1980년대 로진이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기록한 뒤에도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입안에서는 음식의 냄새뿐만 아니라 촉감과 맛이 함께 느껴지므로 어디까지가 후각의 영역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튜브를 삽입하고 정비측 후각과 후비측 후각을 구별하여 냄새 맡게 하는 정교한 실험을 통해서야 마침내 로진의 가설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냄새가 고약하다는 이유로 치즈나 홍어 같은 음식을 피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그런 음식을 즐기는 사람을 멸시하거나 흉보기도 한다. 하지만 날숨으로 느끼는 후비측 후각의 냄새야말로 맛의 진국이다. 잊지 말자. 진짜 맛이란 편견을 버리고 음식을 입에 넣어야 알 수 있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냄새 음식 냄새 두리안 냄새 음식 심리학자

2023-05-25

[시로 읽는 삶] 궁리가 깊어지는 부엌

늦은 밤에 뭘 생각하다가 답답해지면 제일로 가볼 만한 곳은 역시 부엌밖에 달리 없지./ 커피를 마시자고 조용조용히 덜그럭대는 그 소리는 방금 내가 생각하다 놔둔 시詩같고,(오 시詩 같고)/(…) 매일매일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고요의 이 반질반질한 빛들을 나는 사진으로라도 찍어볼까? 가스레인지 위의 파란 불꽃은 어디에 꽂아두고 싶도록 어여쁘기도 하여라.   장석남 시인의 ‘부엌’ 부분   매일매일 식구들의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부엌. 날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때로 빵이 구워지기도 하는 부엌은 예부터 성스러운 장소였다. 조상들은 부엌을 관장하는 신을 조왕신이라고 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던 예전의 어머니들은 부뚜막을 아주 신성시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남을 험담하지 않아야 하고 부뚜막에 걸터앉거나 함부로 발을 디디지 못하게 했다. 늘 정갈하게 닦고 깨끗하게 관리했다. 밥을 풀 때 첫 주걱의 밥을 부뚜막에 놓는 습관은 부엌의 신을 존중하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부엌은 여자들에게 노동이 강요되는 장소였다. 사랑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해야 하는 부엌일은 그 경중의 여하를 막론하고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때 부엌이 족쇄라고 생각된 적이 있다. 세 아이의 밥을 책임져야 하는 어미로서 부엌은 피할 수 없는 노역의 장소라고 생각되어 부엌에서 탈출할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 부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만을 기다렸다.   부엌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에 배타적이기도 하고 한 인간이 희생양이 되어야 순조로워지는 세상사가 부조리하다고 생각되어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도 잠깐, 아이들은 커서 떠나가고 나의 부엌은 한동안 적막해졌다. 음식 냄새가 풍기지 않는 부엌은 소식이 끊긴 관계처럼 적적하다.     부엌이 갈등의 장소이던 시간을 거쳐 이즈음에 이르고 보니 부엌이 아늑하고 평화로운 장소임을 알게 된다. 음악을 들으며 장아찌를 담고 김치전을 부칠 때 부엌은 온갖 잡념을 버리고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앞쪽에 넓은 창이 있는 카페 같은 부엌을 갖는 게 소망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각각 제 방에서 숙제하고저녁 불빛 아래서 음식을 만들던 날들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진즉에 깨달았더라면 부엌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이 훨씬 빛났을 것이다. 궁리가 깊은 부엌이 되어 영혼을 다스리는 명품 레시피 하나쯤 개발되었을지도 모른다.     초밥의 명장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오노 지로는 90이 넘은 나이에도 완벽한 초밥을 만들기 위해 일과 사랑에 빠져 있다고 한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최고령 요리사이기도 한데 영혼이 깃든 초밥을 만드는데 일생을 바치고도 늘 완벽한 초밥을 만들려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고 한다.   시인은 시 말미에 “공기 속의 그릇들은 내 방의 책들보다 더 고요히 명징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읽다가 먼데 보는 얄팍한 은색銀色시집詩集 같고”라고 한다.   음식을 만드는 도구로서의 그릇이 담고 있는 명징한 내용은 은색 시집과 같다는 시인의 말은 영혼이 깃든 시를 쓰는 일이나 영혼이 깃든 음식을 만드는 일이나 다를 게 없는, 사랑에 관한 일이어서 훈훈하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궁리 부엌 한때 부엌 음식 냄새 장석남 시인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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